숲과나눔ᐧ사랑의열매ᐧ기후변화행동연구소
‘2025 초록열매 컬렉티브: 혁신과 성과’
“주민 400명이 사는 물걸리마을에 분리배출장은 없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분리배출장은 1~2km 떨어진 이웃 마을에 있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는 큰 부담이었죠. 농사짓는 분이 많은데 폐농약을 처리할 공간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김인호 삼삼은구 대표)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의 비영리단체 삼삼은구의 활동가들이 마을 폐기물 문제해결에 뛰어든 건 지난해 10월이었다. 숲과나눔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함께 진행하는 ‘초록열매 농촌쓰레기 컬렉티브’에 합류하면서다. 활동가들은 마을회관 앞에 영농폐기물과 폐농약병을 수거할 분리배출 공간을 만들고, 마을 주민과 관리 방안을 논의했다. 180가구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영농폐기물 처리법을 안내하는 ‘모아사용설명서’를 배포했다. 지난 4월에는 지자체에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정책 포럼을 개최했다. 김인호 대표는 “연평균 160kg 수준이던 폐농약병 수거량이 9개월만에 600kg를 넘었다”며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 동네에 굴러다니거나 추적되지 않았던 폐기물을 한 곳에서 관리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재활용되지 않던 농촌폐기물과 종이팩을 자원으로 순환시키기 위한 실험 성과를 공유하는 ‘2025 초록열매 컬렉티브 컨퍼런스’가 지난 24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 페럼홀에서 열렸다. ‘초록열매 컬렉티브’는 숲과나눔과 사랑의열매가 자원순환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으로 조성한 시민 주도형 사회혁신 플랫폼이다. 숲과나눔ᐧ사회복지공동모금회ᐧ기후변화행동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이날 행사는 시민 9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지난해 10월부터 진행된 2기 활동 결과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삼삼은구를 비롯한 7개 파트너 기관은 ‘컬렉티브: 혁신과 성과’를 주제로 지난 9개월간 전국 각지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성과를 소개했다.
분리배출장이 들어서자 마을이 달라졌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농촌 지역에서 맞춤형 쓰레기 수거 체계를 실험한 ‘초록열매 농촌쓰레기 컬렉티브’의 사례 발표가 진행됐다. 농촌에서는 농사철이면 생활폐기물 외에도 폐비닐, 폐농약병, 차광막 등의 영농폐기물이 대량으로 발생한다. 하지만 농촌에는 분리배출장 인프라와 수거 처리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지역이 많아 폐기물이 소각되거나 방치돼 농촌 경관을 해치고, 산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삼삼은구는 마을 중심에 ‘자원순환텃밭 모아’라는 공간을 조성해 주민들이 직접 분리배출을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폐농약병 처리의 불편함도 해결했다. 기존에는 폐농약병은 한국환경공단이, 남은 농약은 지자체가 각각 수거를 맡아 주민들이 두 폐기물을 각각 다른 장소에 버려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자원순환텃밭 모아에서는 병과 농약을 일괄 수거했다. 분리배출장 관리는 노인일자리 사업과 연계해 운영했다. ‘모아지기’로 선발된 어르신 4명은 하루 평균 2시간씩, 월 60시간 활동하며 76만 원의 급여를 받는다. 김인호 대표는 “폐기물을 편하게 버릴 수 있는 공간과 책임지고 관리할 사람이 있으면 자원순환은 훨씬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며 “초기에는 주민들이 우리가 돈벌이를 목적으로 일을 벌인다며 의심했지만, 지금은 폐기물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관계가 됐다”고 말했다.
전북 남원 산내면의 변화도 소개됐다. 이곳에서 제로웨이스트샵 ‘싱글벙글_비니루없는점빵’을 운영하는 활동가들은 산내면 12개 마을 주민을 설득해 영농‧생활폐기물 관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재향 대표활동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프로젝트 시작 당시 산내면의 영농폐기물 배출장은 고작 5곳이었다. 폐기물이 한데 뒤섞여 버려지는 바람에 재활용률도 낮았다. 활동가들은 12개 마을 이장단과 주민들을 수시로 만나 프로젝트 취지를 설명하고 참여를 독려했다. 이후 기존 배출장을 정비하거나 새로 설치했고, 각 마을에서 배출장을 관리할 ‘마을환경감시원’ 총 12명을 선발해 상시 관리 체계를 마련했다. 면 단위 전담 관리자도 선발했다. 관리자가 직접 재활용품을 주 4회 품목별로 수거해 집하장에 가져다 두면 남원시가 이를 회수하기로 했다.
올해 2월~5월 모인 생활쓰레기는 4985kg으로 작년 같은 기간(2280kg) 수거량보다 두 배 증가했다.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간 수거된 영농쓰레기는 3만371톤으로 지난해에 비해 611톤 늘었다. 지난 4월에는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지자체와 주민, 시군의회가 모여 농촌쓰레기 문제의 해결책을 논의하는 포럼을 개최됐다. 이재향 대표활동가는 “재활용률을 지속가능하게 높이기 위해서는 주민들은 깨끗하게 분리배출하고, 지자체에서는 책임지고 수거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면서 “최근 면장, 국회의원, 남원시장 등 주요 관계자들을 만나 제도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자원순환 외에 공동체에서 일어난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인호 삼삼은구 대표는 “폐기물 수거를 맡은 주민들은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 가정을 직접 방문해 쓰레기를 수거하면서 자연스럽게 돌봄의 역할도 수행하게 됐다”면서 “결과적으로 독거노인 돌봄 문제 해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이재향 대표활동가는 주민 간 교류 확대를 성과로 꼽았다. 그는 “과거에는 원주민과 귀촌인 간 소통이 단절된 마을도 있었지만 분리배출을 주제로 논의하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대화와 신뢰가 쌓이는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허그림 숲과나눔 캠페이너는 농촌쓰레기 문제의 확장성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 경북에서 발생한 산불 사례처럼 농촌 쓰레기는 단순히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와 연결된 공동의 과제”라면서 “이 자리가 이런 인식을 확산하고 도시와 농촌이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출발점이 바란다”고 말했다.
현장 실험에서 정책으로
두 번째 세션 ‘초록열매 종이팩 컬렉티브’ 세션의 첫 연사로는 김현정 경기환경연합 사무처장이 나섰다. 김 사무처장은 전국 최초로 종이팩 수거 활성화를 위한 제도와 정책이 마련된 경기도 시흥시 사례를 소개했다. 시흥에서는 능곡지구 공동주택(아파트) 6개 단지에 종이팩 수거함 25개를 설치하고, 경기환경운동연합ᐧ댓골마을학교ᐧ시흥도시공사ᐧ시흥시가 협력하는 종이팩 공공수거 거버넌스를 구축했다. 경기환경운동연합은 전체 사업 총괄을, 마을 공동체 댓골마을학교는 종이팩 수거함 관리와 분리배출 홍보ᐧ교육을 담당했다. 시흥도시공사는 아파트에서 나온 종이팩을 수거해 공공선별장으로 운반했고, 시흥시 자원순환과에서는 각 아파트 단지에 종이팩 분리배출 안내와 협조 공문을 발송했다. 지난 3~5월, 시범단지 6곳에서 총 498kg이 수거됐다. 지난 23일에는 전국 최초로 ‘시흥시 종이팩 분리배출 활성화에 관한 조례’가 통과됐다.
이어 무대에 오른 문지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전북 전주시의 활동 성과를 공유했다. 전주시에서는 종이팩이 전주 내에서 다시 화장지로 재생되어 시민에게 돌아오는 ‘지역 완결형 자원순환 체계’ 구축을 목표로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전주시에는 전체 아파트 596단지 중 약 27%에 해당하는 161개 단지에 종이팩 전용 수거함 834개가 설치된 상태다. 이 수거함을 통해 배출된 종이팩은 민간 재활용업체 ‘사람과환경’이 수거ᐧ선별한다. 문 사무처장은 “최종적으로는 전주시 전체 아파트 단지에 수거함을 확대 설치하고, 시가 직접 수거를 책임지는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가 수거한 종이팩을 광학선별기 시설을 갖춘 사람과환경에서 품목별로 분류하고, 전주 지역 내 제지공장으로 보내 화장지 등으로 재생산되도록 할 것”이라며 “이러한 구조가 완성되면, 지역 내에서 자원이 순환되는 지속가능한 모델이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 사례는 부산 연제구와 서울 서초구 아파트 단지에서 진행된 소비자기후행동의 프로젝트였다. 소비자기후행동은 두 지역 아파트 단지에 종이팩 수거함을 설치하고, 주민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 모니터링, 정책 간담회 등을 함께 진행했다. 서초구에서는 서초구자원봉사센터와 협력해 주민 봉사단이 단지 내 부스를 운영하고, 서포터즈 활동도 펼쳤다. 원건형 소비자기후행동 수도권광역팀장은 “주민들은 올바른 분리배출이 실제로 효과적인 자원순환으로 이어진다는 효능감을 얻게 됐다”며 “이러한 성과가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수빈 지구를지키는소소한행동(이하 지소행) 책임매니저는 서울 중구 카페 214곳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그는 “전체 종이팩 배출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카페의 종이팩을 중구의 공공 수거 시스템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지소행은 중구를 27개 구역으로 나누고 대학생 서포터즈 75명을 모집해 777개 카페를 직접 방문해 참여를 독려했다. 서포터즈들은 참여 의사를 밝힌 214개 카페에 종이팩 전용 비닐봉지를 배포하고, 기존에 일반 종이류와 함께 버려지던 종이팩을 별도로 분리배출하도록 했다. 올해 상반기 중구 재활용 선별장의 종이팩 출고량은 11.12톤으로 전년 대비 약 233% 증가했다. 김수빈 매니저는 “앞으로 더 많은 카페가 참여할 수 있도록 중구청에 행정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며 “중구의 사례가 다른 지자체로도 확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패널토론에서는 종이팩 컬렉티브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현정 경기환경연합 사무처장은 “조례 제정 그 자체보다, 그 조례가 왜 필요한지 현장에서 증명해 내는 일이 훨씬 중요하고 어려웠다”면서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종이팩 분리배출에 대한 주민 수용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런 변화가 자리 잡으려면 결국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형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수빈 지소행 책임매니저는 “직접 발로 뛰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취지에 공감한 카페 사장님들께서 빙수나 커피를 건네며 응원해줬다”면서 “그 순간마다 현장에서 이 활동에 대한 공감과 지지가 크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모더레이터를 맡은 조은샘 도담마을사회적협동조합 이사는 “국내 종이팩 재활용률은 여전히 13%에 머물러 있다”면서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 개선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반전의 시작’이라는 ‘초록열매 컬렉티브’ 2기 주제에 걸맞게 앞으로 의미 있는 반전이 일어날 수 있도록 많은 이해관계자가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2기 컬렉티브 성과를 바탕으로 숲과나눔과 파트너 단체들은 종이팩과 농촌쓰레기 자원순환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정책을 제안했다. 농촌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제안에는 ▶︎마을 맞춤형 수거체계 운영 지원 ▶︎농촌쓰레기 수거처리 체계 효율화 ▶︎마을공동체를 돕는 중간지원조직운영 ▶︎영농폐기물 발생 저감 대책 수립 등이 포함됐다. 종이팩 재활용률을 높이기 한 제안으로는 ▶︎종이팩 문전배출 체계 수립 ▶︎지자체 맞춤형 회수체계 구축 ▶︎지자체 공공선별장 종이팩 선별 의무화 ▶︎종이팩 자원순환 활성화 촉진 등이 제시됐다.
장재연 숲과나눔 이사장은 “지난 2년간의 컬렉티브 활동을 통해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종이팩 재활용과 농촌쓰레기 문제가 공론화됐고, 전국 각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적인 변화의 조짐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면서 “남은 3기 활동 기간에는 농촌쓰레기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정책을 구체화하고, 지자체별 종이팩 자원순환 제도화를 추진하는 등 자원순환 정책의 실효성을 높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2025년 6월 26일 최지은 기자
출처: 더버터(https://www.thebutter.org/news/articleView.html?idxno=1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