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팩 재활용률 13%, 어디서 막히고 있나
– 고급 펄프 자원, 재활용 필요성과 현실의 괴리
– 서초구 시범사업, 자원순환 체계 변화의 신호탄
[지데일리]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우유팩이나 주스팩이 실제로는 대부분 재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급 천연펄프로 만들어져 휴지, 백판지 등 다양한 제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종이팩이지만, 국내 종이팩 재활용률은 13%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앞으로의 전망은 어떨까.
재활용률 13%의 현실, 어디서 막히나
종이팩은 연간 약 7만 5000 톤이 출고되지만, 대부분이 일반 폐지와 섞이거나 종량제 봉투에 버려져 재활용되지 못한다. 특히 멸균팩은 복합재질로 구성되어 있어 일반 종이와 분리해 수거하지 않으면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실제로 멸균팩의 재활용률은 2%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저조한 재활용률은 단순히 시민들의 무관심 때문만이 아니다. 제도적 미비, 분리수거 인프라 부족, 종이팩 재활용 제품에 대한 낮은 수요 등 복합적인 구조적 문제가 얽혀 있다.
종이팩 재활용, 왜 중요한가
종이팩은 고급 펄프를 원재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재활용만 제대로 된다면 수입 펄프 의존도를 낮추고, 탄소배출 감축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내 화장지 시장에서 수입 화장지의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종이팩을 재활용한 재생 화장지의 판로가 좁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재활용 업체들도 수거와 선별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초구 3만3000 세대, 변화의 시작을 알리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8일 서울시와 서초구, (재)숲과나눔, 천일에너지, (사)한국멸균팩재활용협회, 테트라팩(유)이 힘을 모았다. 이들은 서초구 내 80개 아파트 단지, 총 3만 3000 세대에 종이팩 전용 수거함을 설치하고, 분리배출 시범사업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행정적 지원을, 숲과나눔은 시민 인식 제고와 홍보를, 천일에너지는 종이팩의 정기 수거를, 한국멸균팩재활용협회와 테트라팩은 인프라 지원을 맡았다. 이처럼 각 기관이 역할을 분담해 자원순환 체계 구축에 나선 것이다.
시민 주도 변화, 제도적 뒷받침은 필수
숲과나눔 장재연 이사장은 “종이팩 분리배출 시범사업은 이미 여러 지역에서 시민 주도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고, 다수의 지자체와 기업도 동참하고 있다”며 “환경부는 이번 시범사업의 의미를 엄중히 인식하고, 종이팩을 별도 수거 품목으로 지정하는 방향으로 <재활용가능자원의 분리수거 등에 관한 지침>을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환경부는 2027년까지 일반팩의 재활용 의무량을 출고량의 58.8%, 멸균팩은 17.2%까지 끌어올릴 계획이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재활용률이 떨어지고 있어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종이팩 재활용의 가장 큰 문제는 수거와 분리배출 체계의 미비, 시민 인식 부족이다. 멸균팩은 복합재질로 인해 재활용이 더욱 어렵고, 지난해부터는 ‘재활용 어려움’ 표시까지 붙으면서 시민들의 분리배출 의지도 꺾이고 있다.
게다가 재생 화장지 등 종이팩 재활용 제품의 판로가 좁아지면서, 재활용 산업 자체의 지속가능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번 서초구 시범사업처럼 각 주체가 역할을 분담하고, 시민 인식 개선과 인프라 확충이 병행된다면 변화의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실제로 서울시 어린이집 등에서 진행된 종이팩 수거 캠페인은 1년 만에 10톤이 넘는 종이팩을 수거하는 성과를 냈다. 앞으로 종이팩이 별도 수거 품목으로 지정되고, 재생 제품의 판로가 확대된다면, 종이팩 자원순환 체계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종이팩, 이제는 버려지는 자원이 아닌, 다시 쓰이는 자원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시민, 기업, 지자체, 정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5년 5월 10일 이종은 기자
출처: 지데일리 (http://www.gdaily.kr/bbs/board.php?bo_table=news&wr_id=18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