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정부는 ‘종이팩’ 분리배출 표시를 일반팩과 멸균팩(알루미늄박이 포함된 종이팩)으로 변경하고 두 품목을 따로 배출하도록 했다. 지난해 환경부 지침에 따라 멸균팩에 ‘재활용 어려움’ 표시가 붙기 시작했다. 「재활용가능자원의 분리수거 등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종이팩은 분리수거 품목 중 ‘골판지 외 종이류’에 포함된다. 종이팩은 종이류에 포함된다는 것일까. 멸균팩은 재활용이 안 된다는 의미일까. 종이팩을 어떻게 분리배출해야 하는지 시민들은 헷갈린다. 종이팩 재활용률이 유독 낮은(2022년 기준 13.7%,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재)숲과나눔은 지난해부터 사랑의열매 후원으로 6개 파트너 단체(기후변화행동연구소, 도담마을사회적협동조합,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 유어스텝, 소비자기후행동, 지구를지키는소소한행동사회적협동조합)와 ‘초록열매 종이팩 컬렉티브’를 구성하고 종이팩 자원순환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특히 이해관계자를 모아 논의의 장을 여는 정책 포럼을 총 9회에 걸쳐 개최한 뒤,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종이팩 자원순환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안을 제안했다.
25일 오전 서울 국회도서관 소희의실에서 열린 ‘초록열매 종이팩 컬렉티브-종이팩 자원순환 제도 개선 토론회’에서는 종이팩 자원순환과 관련한 제도들을 점검하고 초록열매 종이팩 컬렉티브의 정책 제안 내용을 제도로서 구체화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 “종이팩 분리배출, 시민들은 참여하고 있어…제도가 뒷받침돼야”
첫 번째 발제를 맡은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종이팩 자원순환 문제 진단과 대안’이라는 주제로 종이팩 재활용 현황과 애로사항, 종이팩 재활용률 제고 방안 등을 설명했다.
우선 홍 소장은 정부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품목 중 종이팩을 일반팩과 멸균팩으로 나누어 재활용 실적을 관리하는 만큼 ▲종이팩과 폐지를 구분 ▲종이팩 중 일반팩과 멸균팩을 구분 등 이상의 두 가지를 조건으로 두고 자원순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와 같은 전제를 둔 채 종이팩 재활용 현황을 살폈다. 홍 소장은 종이팩 재활용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라며 “특히 멸균팩의 재활용률이 처참한 수준으로 낮다”고 지적했다. 또한 물질흐름 분석을 통해 “시민들이 종이팩은 분리배출 대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며 “시민들은 종이팩을 분리배출하고 있다. 그런데 그 다음 단계의 인프라가 받쳐주지 못해 낮은 재활용을 유지하고 있다. 시민들이 분노할 수 있는 지점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홍 소장은 미흡한 종이팩 별도 분리배출 체계, 미흡한 멸균팩과 일반팩의 선별 체계, 부족한 종이팩 재활용제품 수요 등을 문제 요인으로 짚었으며 개선 방안으로 ▲종이팩 분리배출 및 수거 체계 개선: 「재활용가능자원의 분리수거 등에 관한 지침」 내 재활용가능자원의 품목 중 종이팩을 종이로 분류하지 않고 별도 품목으로 분리, 멸균팩 ‘재활용 어려움’ 표기 기준 개선, 공동주택 분리수거 품목에 종이팩 포함, 주택가의 경우 종이팩을 다른 용기류와 함께 배출한 뒤 공공선별장에서 종이팩 별도 선별 ▲종이팩 회수 체계 개선: 일반팩과 멸균팩의 선별 체계 도입 ▲종이팩 재활용 시장 개선: 공공기관 재활용제품 구매 활성화, 재생제품 사용에 대한 EPR 인센티브, 종이팩 재활용제품 다양화, 민간 수요 확대 위한 캠페인 진행 등을 제언했다.
이어 이지현 숲과나눔 사무처장은 초록열매 종이팩 컬렉티브에 참여한 5개 사업단 활동과 9회에 걸친 정책 포럼을 통해 도출한 정책 제안 내용을 공유했다.
초록열매 종이팩 컬렉티브가 제안하는 정책 개선안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1. 종이팩 별도 수거
1) 환경부 분리수거 지침 개정
2) 지자체 종이팩 수거 의무 강화
2. 멸균팩 재활용 확대
1) 종이팩 재활용 인정 범위 확대
2) 멸균팩 ‘재활용 어려움’ 표시 개선
3. 종이팩 재활용제품 시장 활성화
1) 녹색 제품 구매 촉진
2) 종이팩 본리배출 홍보 및 인식 개선
특히 이 사무처장은 지자체 종이팩 수거 의무 강화와 관련해 정부의 합동평가 지표를 언급하며 “(합동평가가 제시하는 ‘주민 1인당 재활용가능자원 분리수거량’ 지표를 보면) 무게 단위로 점수를 부여하기 때문에 무게가 많이 나가는 품목 위주로 수거가 이루어지고 있다. 회수량이 낮은 품목을 별도로 분류해서 평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
또한 “종이팩 재활용 범위에 종이류가 아닌 재활용제품은 들어가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며 “다양한 제품군을 종이팩 재활용 범위로 인정해야 한다고 제안해 왔고 최근 종이팩을 건축자재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다”고 밝혔다.
이후 종이팩 자원순환 제도 개선 의견을 검토하고 이행 촉진 방안을 논의하는 지정토론이 이어졌다.
이성천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사업1본부장은 종이팩을 별도 분리수거 품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제안에 대해 “유리병이나 금속캔처럼 별도 배출할 수 있도록 하고 지자체가 관리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종이팩은 종이류에 혼입되면 현실적으로 선별이 어렵다. 그렇기에 혼입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종이팩이 별도로 분리배출되는 품목으로 지정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아울러 종이팩 재활용제품 소비 촉진과 관련해 정부 부처 및 공공기관의 의무 구매, 재활용제품 사용에 대한 제도적 인센티브 제공 등을 제언했으며 “멸균팩을 재활용하기 위해 정책을 만들었다면 초창기에 더 많은 지원을 하고 규제를 완화해서 멸균팩 재활용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윤상헌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재활용2본부장은 물질흐름 등을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활용을 잘하려면 일단 가정에서부터 분리배출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며 ▲공동주택 대상 종이팩 회수 체계 구축: 관내 수거업체를 통한 종이팩 별도 회수 체계 구축 ▲단독주택 대상 종이팩 교환 사업 확대: 행정복지센터 등을 활용한 종이팩 교환 사업 활성화 ▲종이팩 분리배출 계도 및 홍보 강화 등을 이야기했다.
강재원 사람과환경 대표는 전라북도 전주에서 지자체와 함께 종이팩 수거 사업을 운영한 경험을 공유했다. 해당 사업은 사람과환경, 전주시(지자체), 한국멸균팩재활용협회, 전주지속발전가능협의회가 ‘전주시 종이팩 자원순환 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여 공동 추진했다. 이와 관련해 강 대표는 “지자체가 직접 참여하고 생산자 단체가 결합했다는 점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고 평했으며 “다만 지자체 역할이 조금 더 강화됐어야 하는데 주관하는 정도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고 아쉬웠던 점을 밝혔다.
사람과환경은 해당 사업을 통해 전주시 내 공동주택의 32.7%에 종이팩 분리수거함을 설치했다. 그는 “분리수거함만 설치하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종이팩 수거 비율이 2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밝히며 분리수거함 설치뿐 아니라 별도회수체계, 시민 대상 캠페인(홍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회수·선별 업체의 안정적 사업 영위를 위해 회수 및 선별시스템의 경제성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주무부처인 환경부의 이정미 자원순환국 자원재활용과 과장이 제안된 내용에 대한 답변을 전했다. 이 과장은 지침 개정과 관련해 “별도 수거가 필요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다만 시기를 고민하고 있다. 별도 수거를 시행하게 되면 품목별로 배출할 수 있는 수거함을 마련하고 수거 후 다른 품목들과 따로 운반할지, 선별장에서 따로 선별할지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라며 정부 입장에서는 제도를 바꾸기 전에 먼저 고려해야 하는 대목들이 있음을 밝혔다.
또한 합동평가 지표를 개선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행정안전부와 협의해서 2026년도 평가 때는 지표가 개선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으며, 멸균팩에 ‘재활용 어려움’ 표기를 하도록 규정한 지침에 관해 “문구가 혼란을 줄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는 생산자들이 역회수나 재활용 기술 개발, 재질 개선 등 자발적 노력을 하도록 독려하는 취지로 시행한 제도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바꾸기에는 검토가 더 필요하다. 다만 업체의 개별적 노력으로 회수가 이루어질 때는 ‘재활용 어려움’ 표시를 제외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재활용제품 시장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점에도 공감하며 “공공기관 경영평가 지표에 관련 내용을 반영하는 등 공공기관이 재활용 제품 구매를 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고 구체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것이다”고 설명했고 “(지침상 100% 천연펄프로 만든 화장지만 구매하도록 한) 국방부에 요청해서 지침을 개선하겠다는 답변도 받은 상태다”고 밝혔다.
한편 홍 소장은 토론 말미 “종이팩을 특별하게 취급해서 따로 모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며 “종이팩 수거함을 설치하면 회수 차량이 종이팩 수거함만 별도로 돌면서 수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캔이나 플라스틱을 그렇게 수거하는가? 그렇지 않다. 재활용품 수거 업체가 폐지와 섞지 않고 다른 재활용품과 한꺼번에 수거하면 된다. 그렇게 가져가서 직접 선별해도 되고 종이팩 회수 사업자에게 넘겨도 된다”고 부연했다.
2024년 9월 27일 노윤정 기자
출처: 라이프인 (https://www.lifein.news/news/articleView.html?idxno=17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