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포럼 #2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개요 및 종이팩 자원순환 문제>

초록열매 종이팩 컬렉티브 정책포럼 두번째 주제는 바로 자원순환의 법적 토대이자 핵심 수단인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이하 EPR). 종이팩 자원순환 문제를 들여다볼수록 ‘EPR에 근거해’, ‘현행 EPR제도의 한계로’ 등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다 보니 이번 기회에 EPR의 법적 근거, 운영 체계와 기관별 역할 등 A to Z를 알아보고, 종이팩 자원순환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생산자의 재활용 의무를 실질적으로 전담 운영, 지원하는 두 개의 핵심기관인 (사)한국포장재재활용산업공제조합(이하 공제조합)과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이하 KORA)의 종이팩 담당자를 모셨는데요. 발제는 공제조합의 이시헌 팀장님, 지정토론은 KORA의 성대원 팀장님이 맡아주셨고, 사업 수행단의 질의응답과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11월 23일 열린 2차 포럼의 내용을 요약·정리한 리포트를 전합니다.

EPR이란?

국내에 EPR이 도입된 것은 2003년. 공교롭게도 올해로 시행 20주년이 되었는데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제품·포장재를 제조·판매하는 생산자에게 해당 제품·포장재로 인한 폐기물 품목별로 재활용 의무를 부여하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재활용에 소요되는 비용 이상의 재활용 부과금을 생산자에게 부과하는 제도입니다(근거: 자원의절약과재활용촉진에관한법률 제16조 (제조업자 등의 재활용의무)). EPR제도의 주요 주체는 크게 5곳으로 각 역할은 다음과 같아요.

EPR제도 주체별 역할(출처: 한국환경공단 2023년 EPR 제도 교육자료)

현재 EPR의 재활용의무 대상은 4대 포장재 군(종이팩, 금속캔, 유리병, 합성수지포장재), 9대 제품군(윤활유, 전지류, 타이어, 조명제품, 수산물 양식용 부자, 곤포 사일리지용 필름, 김발장, 필름류 5종, 합성수지 재질의 제품 15종)인데 매해 달라져요. 국내 자원순환을 책임지는 또 다른 제도인 폐기물부담금제도와 자발적협약제도 대상 품목 중 재활용성이 높거나 자발적 협약 추진 후 재활용이 잘 되는 경우 ERP 대상으로 전환하는 것이죠.

EPR의 의의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종전 제품의 재질구조 개선 정도에 머물렀던 생산자들의 의무 범위를 소비자 사용 후 발생되는 폐기물의 실질적인 재활용으로 확대한다는 것이고요. 하지만 ‘생산자 책임’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고 이미 생산자 책임 원칙에 의해 ’92년부터 운영해 오고 있는 예치금 제도를 보완 개선하여 2003. 1. 1일부터 시행하고 있어요.

EPR 의의 1. 생산자 책임범위 확대(출처: EPR 홈페이지 https://www.iepr.or.kr)

두 번째는 자원순환을 둘러싼 여러 제도 가운데 폐기물 관리 범위를 사용 후 폐기 단계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고, 생산 시점부터 폐기까지 즉 제품의 전과정으로 확대했다는 것입니다.

EPR 의의 2. 제품 전과정을 고려한 폐기물 관리

한편 국내 EPR 제도는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생산자와 전과정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요. 우선 EPR 제도에서 책임이 부여된 생산자는 원료, 중간재, 부품 생산자는 제외하고 최종제품 생산자(대상 품목인 포장재의 경우 포장재에 내용물을 담아 판매)에게만 책임이 부여됩니다. 종이팩 포장 용기만 해도 제지회사(펄프로 원지 생산), 종이팩 생산자, 제조 음료를 종이팩에 담아 판매하는 음료업체 등 여러 생산자가 있는데 이들을 모두 포함하면 정책 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지겠죠. 따라서 EPR 제도에서는 용기 선택 최종 결정권이 있는 생산자가 책임이 가장 크다는 전제하에 음료회사만 책임을 지고, 나머지 생산자(제지회사, 종이팩 생산자)에게는 구매자인 음료회사가 재활용성을 높일 수 있는 포장 용기를 요구, 선택하는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논리이지요.

포장 용기 생산자 중 EPR 대상 생산자(출처: 서울환경연합 유튜브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EPR’)

EPR에서 말하는 전과정 범위 역시 생산자가 수거부터 재활용의 모든 과정을 직접 책임진다는 의미는 아니고, 소비자 · 지자체 · 생산자 · 정부가 일정 부분 역할을 분담하는 체계로 제품의 설계, 포장재의 선택 등에서 결정권이 가장 큰 생산자가 재활용 체계의 중심 역할을 하도록 하고 있고요.

EPR 규제 대상인 생산자는 크게 두 가지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첫째, 포장재 폐기물의 수집, 선별, 재활용을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물리적 책임이고, 둘째는 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비용 부담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개별 기업에게 각자 알아서 하라고 하면 기업도 이를 관리·감독하는 정부도 들인 수고에 비해 비효율적이고 효과도 불투명하겠죠. 따라서 정부는 이를 전담 관리하는 기관으로 품목군별 공제조합과 지원 기관을 설립해 운영을 맡기고 있는데 10군데가 넘어요.

재활용 의무 품목별 공제조합(출처: 한국환경공단 2023년 EPR 제도 교육자료)

이중 종이팩은 (사)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이 담당해 종이팩 의무생산자에 해당하는 기업들에 해마다 납부해야 할 분담금을 고시하는 한편, 재활용 의무율을 지키지 못한 기업에는 재활용부과금도 부과합니다. 분담금의 가장 큰 용도는 대상 품목을 회수·선별·재활용하는 업체 지원금으로 쓰이는데 업체 실적에 따라 지원금을 분배하고 관리하는 것은 또 다른 비영리 공익법인인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서 담당하고요.

EPR제도 체계 및 흐름도

종이팩 자원순환이 나아갈 길, Beyond 경제성!

앞서 의무생산자들이 내는 부담금은 재활용 산업 관련 기업에 지원금으로 쓰인다고 했는데요. 품목에 따라 직접 재활용 업체만 하거나 회수·선별 업체도 포함하는데 종이팩은 다른 품목에 비해 보관 등 어려움이 많고 유가성이 떨어지는 등 업체 입장에서는 회피하고픈 품목이라 회수·선별·재활용 업체 모두에게 지원금을 지급한다고 합니다.

지금 발생하고 있는 종이팩 재활용률 저하의 원인 중 하나는 1차 포럼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상대적으로 멸균팩의 비중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EPR을 중심으로 한 종이팩 자원순환 체계는 당시 비중이 큰 일반 팩의 자원순환, 즉 ‘일반팩 폐기물=재생 화장지 우수원료’를 토대로 잡혔기 때문이죠. 우선 최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들어오는 수입 천연펄프가 워낙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재생펄프의 경쟁력이 많이 떨어졌고요. 환경부와 산하 기관 등 모두 종이팩 전용 수거함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하지만 다른 품목에 비해 배출량이 적고, 거기에 유가성도 떨어지다보니 행정력과 운송 및 설비 비용까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도 있게 되는 거죠. 그리고 공제조합과 KORA는 지금도 분리배출 품목이 기본 5가지(종이류, 캔 및 고철류, 유리병류, 플라스틱류, 비닐류)에 기타로 의류, 건전지류, 형광등까지 최소 8가지가 넘는데 여기에 종이팩, 게다가 일반팩과 멸균팩까지 추가하면 10가지가 넘어 시민들이 불편할 뿐 아니라 추가 행정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최근엔 (현재로선 화장지 재활용이 불가능한) 멸균팩 비중까지 예상치 못하게 증가하다 보니 일반팩 위주의 종이팩 자원순환 시스템은 대응할 여력도 없이 휘청하는 상황입니다.

​그럼 단기적으로 멸균팩도 기존 종이팩 자원순환 체계의 토대인 재활용 화장지 생산으로 편입시키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텐데요. 그 부분도 고려했지만 우선 가장 큰 장벽은 멸균팩에 쓰이는 펄프는 일반팩의 백색 펄프가 아닌 황색 펄프로 품질에는 별 차이가 없지만 황색 펄프 화장지는 소비자가 구매하지 않고, 그래서 멸균팩 생산자에 백색 펄프로 교체하는 것을 논의하면 원가가 비싸 결국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된 상황인 거죠.

종합적으로 정부와 산하 기관 모두 종이팩 자원순환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 국내 자원순환은 환경성보다는 경제성이 우선, 그것도 상당히 강력한 우선순위이기 때문에 노력 대비 수익이 좋지 않은 종이팩은 계속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도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어떤 사회 문제도 제도만으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시민이 정부, 기업에 요구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결심과 함께요. 그리고 그 중심엔 <초록열매 종이팩 컬렉티브>가 있습니다! 알지 못했던 새롭고 복잡한 문제에 부딪히긴 했지만, 정책포럼을 통해 수행단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을 다시 한번 느끼며 오늘도 종이팩 자원순환 문제 해결에 한 발 더 내디뎠습니다.

종이팩 자원순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알고 싶은 모든 분들을 <초록열매 종이팩 컬렉티브>의 정책포럼에 초대하고 환영합니다!

글 |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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