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2027년부터 분리 수거항목에 종이팩을 포함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종이팩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환경부 차원의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공식 발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 소강당에서 열린 ‘멸균팩 자원순환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맹학균 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은 그동안 멸균팩 배출량이 적다는 이유로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밀려왔음을 인정하고, “실질적인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1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 소강당에서 열린 ‘멸균팩 자원순환 활성화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숲과나눔]](https://cdn.thebutter.org/news/photo/202509/1792_1985_221.jpg)
종이팩은 일반팩과 멸균팩으로 구분되는데, 멸균팩은 위생과 안전을 유지하면서도 플라스틱과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대체 포장재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국내 재활용률은 2%에도 미치지 못한다. 재단법인 숲과나눔은 지난 2023년부터 ‘초록열매 종이팩 컬렉티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환경부에 자원순환 시스템 개선을 꾸준히 촉구해 왔다.
이번 토론회는 재단법인 숲과나눔,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공동주최했으며 정부·기업·시민사회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분리수거 지침 개정, 전국 재활용 체계 구축
환경부는 현행 분리배출-회수-선별-재활용 체계로는 멸균팩 재활용률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전면적인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2026년 2~3개 지자체에서 공동주택, 카페, 학교, 병원, 군부대 등 다량 배출처를 중심으로 멸균팩 분리배출 시범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 결과를 토대로 2027년에는 분리수거 지침을 개정해 종이팩을 별도 수거 품목으로 지정하는 등 전국적 재활용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장재연 숲과나눔 이사장이 ‘멸균팩 자원순환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 숲과나눔]](https://cdn.thebutter.org/news/photo/202509/1792_1989_2544.jpg)
맹학균 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은 “연간 종이팩 배출량은 약 7만5000t이며, 이 중 멸균팩이 3만5000t을 차지한다”며 “국민이 11개 품목을 분리배출하는 상황에서, 연 30만t 규모의 투명 페트병 등과 비교했을 때 종이팩은 상대적으로 양이 적어 별도 수거 품목으로 지정하는 데 부담이 컸다”고 설명했다. 환경부의 입장 변화도 밝혔다. 맹 과장은 “양이 적더라도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환경부 측은 멸균팩의 ‘재활용 어려움’ 표기가 소비자 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점도 인정했다. 맹 과장은 “멸균팩 재질 구조를 단순화하는 과제를 전제로 정부도 제도적 보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술 개발을 통해 멸균팩에서 알루미늄을 제거하고, 펄프와 폴리에틸렌(PE)만으로 구조를 단순화하면 재활용이 용이해지고 제도 개선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맹학균 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은 그동안 멸균팩 배출량이 적다는 이유로 자원순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왔음을 인정하고,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 계획을 밝혔다. [사진 숲과나눔]](https://cdn.thebutter.org/news/photo/202509/1792_1987_238.jpg)
이날 토론회에서는 해외 사례도 함께 다뤄졌다. 유럽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운영 사례는 멸균팩 자원순환 정책 개선에 중요한 참고 사례로 소개됐다. 발제는 유럽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운영 사례와 국내 멸균팩 자원순환의 정책적 과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모니카 로멘스카 엑스프라(EXPRA) 규제·대외협력 총괄은 유럽 국가들이 높은 포장재 재활용률을 달성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으로 투명하고 책임 있는 EPR 제도의 운영을 꼽았다.
‘EPR’은 기업이 생산한 제품이 사용되고 버려진 이후의 처리 과정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페트병을 만든 음료 회사는 그 페트병이 사용된 뒤 수거·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로멘스카 총괄은 EPR 제도가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생산자·정부·지자체·시민 모두의 명확한 역할 수행 ▶︎비영리 구조 운영 ▶︎재정·정보 측면의 투명성 확보 ▶︎정부의 모니터링과 집행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제조업체는 포장재의 재활용 책임을 지고, 재활용이 쉽도록 제품을 설계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법적 틀을 마련하고 관리·감독을 담당하며, 재활용업체는 수거된 포장재를 선별해 새로운 원재료를 생산해야 한다. 시민은 분리배출을 통해 순환경제의 출발점을 책임져야 하며, 이를 위한 교육·동기부여·인프라 제공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정부와 지자체의 보완적 정책이 함께 추진돼야 하고, 이해관계자 간 충돌 없는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EPR은 어디까지나 공익 목적으로 운영돼야 하며, 기업이 납부한 분담금은 수거·운반·재활용 비용 충당에만 쓰여야 한다”고 했다.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이는 시스템 강화와 혁신에 재투자돼야 하며,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멸균팩 재활용을 위한 4가지 제안
이지현 숲과나눔 사무처장은 시민사회와 함께 도출한 정책 제안을 발표했다. 그는 멸균팩 재활용률 제고를 위해 ▶︎분리수거 지침 개정을 통한 종이팩 별도 수거 품목 지정 ▶︎지자체 정부합동평가 지표 개선 등 지자체 역할 강화 ▶︎소비자 혼란을 초래하는 멸균팩 ‘재활용 어려움’ 표시 개선 ▶︎공공기관의 녹색제품 의무구매 관리ᐧ감독 강화 등 과제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시민의 실천이 제도적 개선과 결합될 때 비로소 자원순환 체계가 작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멸균팩 자원순환 활성화 방안 토론회’ 참가자들. 정부·기업·시민사회 관계자들이 참여해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 숲과나눔]](https://cdn.thebutter.org/news/photo/202509/1792_1988_2453.jpg)
토론자로 나선 배연정 서울대학교 그린에코공학연구소 실장은 종이팩 회수체계 개선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종이팩은 유가성이 낮고, 생산량이 적어 정부 지원과 시민운동 없이는 사실상 재활용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숲과나눔과 경기환경운동연합이 경기도 시흥시에서 진행한 자원순환 시범사업을 예로 들면서 “종이팩 전용수거함을 설치하고 주민 대상 인식 개선 캠페인을 추진한 결과, 세대당 월평균 88.7g의 종이팩이 회수됐다”고 했다. 이는 가정에서 실제 소비되는 양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전국으로 확산한다면 재활용률을 2~3배 끌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 배 실장의 설명이다. 또한 정부합동평가에서 지자체별 종이팩 회수 노력과 성과를 정량평가뿐 아니라 정성평가 항목으로 추가하는 아이디어도 제안했다.
황웅환 한국멸균팩재활용협회 사무총장은 국내 멸균팩 재활용 기술 현황을 소개했다. 그는 광학선별시설을 통해 일반팩과 멸균팩을 자동으로 구분할 수 있고, 멸균팩에서 종이 섬유를 추출하고 남은 부산물(polyAl)까지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이미 갖춰져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기술 수준과 재활용 수요는 충분하다”며 “종이팩 회수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분리수거 지침 개정, 회수ᐧ선별업체 지원, 포장재 재활용 등급 표시제 개선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수진 소비자기후행동 대표는 포장재 재활용 등급 표시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 제도는 포장재를 재활용 용이성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재활용 어려움’ 등급을 받은 생산자가 포장재 재질과 구조를 개선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멸균팩은 ‘재활용 어려움’ 등급으로 구분돼 소비자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이 표시로 인해 소비자는 멸균팩을 일반 쓰레기로 배출하고, 결과적으로 재활용을 저해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면서 “정책 목표를 재정립해 멸균팩의 환경적 가치를 살리고, 소비자의 친환경적 선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장재연 숲과나눔 이사장은 “오늘 논의는 멸균팩 재활용 문제를 넘어 기후위기 시대 자원순환의 근본 과제를 다루는 출발점”이라며 “환경부의 제도화 방침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도록 지속적인 감시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5.09.17
출처: 더버터 최지은 기자 (https://www.thebutter.org/news/articleView.html?idxno=17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