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균팩 재활용, 이제는 제도 개선의 길로! <멸균팩 자원순환 활성화 방안 토론회> 현장 기록
지난 9월 15일(월) 오전, 국회도서관 소강당에서 <멸균팩 자원순환 활성화 방안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재단법인 숲과나눔(이사장 장재연), 김주영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김소희 국회의원(국민의힘)이 함께 마련한 이번 자리에는 정부, 기업,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모여 재활용률 2%에 머물러 있는 멸균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모두가 함께 지혜를 모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멸균팩일까요?
두유, 주스 등 다양한 음료를 담는 멸균팩은 위생적이고 안전한 포장재입니다. 일반팩은 흰색 표백팩으로 냉장 보관이 필요하지만, 멸균팩은 갈색 무표백팩에 알루미늄 처리를 한 것으로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최근 탈플라스틱 사회로의 전환 논의가 활발해지며 플라스틱의 대체재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재활용입니다. 2023년 기준 국내 종이팩 출고량은 약 7만 5천 톤, 재활용량은 9.9천 톤, 재활용률은 13%에 불과합니다. 특히 알루미늄이 포함된 멸균팩은 재활용률이 약 2%에 머물러, 자원순환 체계 개선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숲과나눔이 지난 2년 동안 12차례 이어온 정책포럼을 통해 쌓아온 시민사회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정책 제안에 머물렀던 논의가 이번 자리에서 처음으로 환경부의 제도 개선과 실행 계획 발표로 이어지며, 현장에는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되었다는 기대감이 크게 퍼졌습니다.
💬해외 사례에서 배우다
첫 번째 발제에서는 해외 사례가 소개되었습니다. EXPRA1) 규제 및 대외협력 총괄인 모니카 로멘스카(Monika Romenska)는 유럽이 높은 포장재 재활용률을 달성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의 “투명하고 책임 있는 EPR제도 운영”을 꼽습니다.

그렇다면 자주 등장하는 이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은 무엇일까요?쉽게 말해, 기업이 제품을 판매한 이후 버려지는 포장재까지 책임지고 회수·재활용하는 제도입니다.

EPR 제도가 효과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생산자와 정부, 지자체, 시민이 각자의 역할을 맡아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둘째, 정부가 꼼꼼하게 모니터링하고 관리·감독하는 체계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 돈과 자원의 흐름이 시민에게도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결국 시민 입장에서는 “내가 분리배출한 종이팩이 어디로 갔는지, 기업이 낸 분담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있어야 안심하고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운영 과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이야말로 시민 참여를 끌어내는 가장 중요한 힘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제도와 시민의 역할
숲과나눔 이지현 사무처장은 “시민의 실천과 제도 개선이 함께할 때 자원순환 체계가 비로소 작동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숲과나눔은 지난 2년간 〈초록열매 종이팩 컬렉티브〉를 통해 시민사회·기업·정부가 협력하는 모델을 실험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정책 과제가 도출되었습니다.
종이팩 별도 수거 제도화: 일반 종이류에 섞여 버려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이팩을 별도 품목으로 지정하고 수거·회수·선별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
즉, 제도의 변화와 시민의 참여가 함께 맞물려야만 비로소 자원순환이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현장에 울림을 주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
서울대학교 그린에코공학연구소 배연정 실장은 종이팩 재활용의 구조적 어려움을 짚었습니다. “종이팩은 유가성이 낮고 생산량이 적어 정부 지원과 시민운동 없이는 재활용이 어렵다”는 말처럼, 실제 현장에서는 종이팩이 일반 폐지와 섞여 버려지거나 종량제 봉투에 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어 시흥시 시범사업 사례를 소개하며, 공동주택 단지에 전용 수거함을 설치하면 종이팩 재활용률을 기존 15.7%에서 44.2%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한국멸균팩재활용협회 황웅환 사무총장은 산업계의 과제를 강조했습니다. 멸균팩은 알루미늄이 포함된 복합재질이라 선별이 까다로운데, 이를 해결하려면 광학선별기 확대, 회수선별사 지원, 관련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실제로 멸균팩을 받아주는 재활용 업체는 늘었지만 안정적인 회수 물량 확보가 여전히 과제입니다.
소비자기후행동 이수진 대표는 포장재 재질구조 평가제도로 인한 소비자 혼란 문제를 짚었습니다. 멸균팩에 붙은 ‘재활용 어려움’ 문구가 오히려 “재활용 불가능”으로 오해돼 올바른 분리배출을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시민이 혼란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정책 목표와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환경부의 공식 답변과 업계의 응답
이번 토론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건 환경부의 공식 입장이었습니다. 맹학균 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은 “멸균팩은 연간 약 3만 5천 톤 규모로, 그동안 양이 적다는 이유로 후순위로 다뤄져 왔다”는 현실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이어 “2026년 일부 지자체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하고, 2027년에는 종이팩을 별도 수거 품목으로 지정해 전국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재활용 어려움’ 표시는 본래 생산자의 개선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였지만, 실제로는 소비자에게 혼란을 초래했다”며, 앞으로는 기업들의 단순화된 포장재 개발 노력을 전제로 제도적 보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좌장을 맡은 숲과나눔 장재연 이사장은 “오늘의 논의는 멸균팩만의 과제를 넘어 기후위기 시대 자원순환의 큰 방향을 다루는 출발점”이라며 “환경부의 제도화 방침을 환영하지만, 이미 여러 지자체와 민간에서 시범사업을 통해 효과가 입증된 만큼 제도 개정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국회, 정부, 기업, 시민사회가 한자리에 모여 멸균팩 문제를 함께 논의한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무엇보다 환경부가 2027년 전국 시행 계획을 공식화하면서 멸균팩 자원순환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숲과나눔은 앞으로도 시민사회와 함께, 지속가능한 자원순환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제도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시민 한 사람의 참여가 모여 정책을 실질적인 변화로 완성시킵니다. 앞으로도 이어질 초록열매 종이팩 컬렉티브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세요.
글 | 숲과나눔 제수민
사진 | 숲과나눔 안다영
1)EXPRA (Extended Producers Responsibility Alliance): 캐나다, 유럽 등 31개국 34개 기관들로 구성된 생산자책임재활용연합. 회원 기관들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통해 연간 1,800만 톤 이상의 포장재를 회수·재활용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