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기준 종이팩(일반팩, 멸균팩) 재활용률은 13%에 불과하다. 연간 출고량 7만 5천여 톤의 60%는 폐지 혼입, 27%는 종량제 봉투로 배출된다.
자원순환의 공식은 단순하다. 양질의 자원을 많이 모으고, 이걸로 만든 재활용 제품이 시장에서 잘 팔리면 알아서 돌아간다. 그런데 종이팩은 돈도 안 되고 양이 적다. 돈이 되면 어떻게든 모을텐데, 폐지 더미에서 종이팩을 골라내는 비용이 더 든다. 재활용가능한 소중한 자원은 그대로 소각 또는 매립된다.
종이팩은 종이가 아니다
매년 하락하는 종이팩 재활용률에 ‘종이팩은 종이가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시민들이 먼저 움직였다. 2019년 광주, 카페라떼클럽은 카페들을 돌아다니며 종이팩을 회수하고, 이를 주민센터에서 화장지로 교환하여 지역사회에 기부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는 매력적인 활동 모델로 종이팩 자원순환 운동을 전국에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민들은 카페, 어린이집 등 대량배출처를 돌아다니며 종이팩을 모으거나(쓰맘쓰맘, 지구를지키는소소한행동 등), 지역사회의 여러 기관들에 수거함을 설치/운영하여 종이팩을 모았다(밀크로드, 전국자원봉사센터, 제로웨이스트가게, 한살림 등). 시민 인식 제고를 위한 교육/캠페인(소비자기후행동 등), 모니터링(멸종위기프로젝트, 서울환경연합 등) 활동도 결합하여 광범위한 시민 참여를 이끌어냈다.


2023년 숲과나눔은 이러한 시민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종이팩 컬렉티브>를 런칭했다. 종이팩 자원순환 시스템을 혁신하기 위해 다양한 종이팩 회수모델 구축 실험을 중심으로 교육/캠페인, 제도 개선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노원구, 도봉구, 경기 시흥시, 전북 전주시 공동주택 14만여 세대에 종이팩 수거함을 설치했고, 시흥시, 전주시 등 지자체 종이팩 자원순환 활성화 조례 제정에 기여했다.


2024년에는 시민사회와 함께 종이팩 재활용률을 제고하기 위해 ▲분리수거 지침 개정을 통한 종이팩 별도 수거 품목 지정 ▲지자체 정부합동평가 지표 개선 등 지자체 역할 강화 ▲소비자 혼란을 초래하는 멸균팩 ‘재활용 어려움’ 표시 개선 ▲공공기관의 녹색제품 의무구매 관리감독 강화 등 정책 제안을 발표하고, 기후에너지환경부(이하 환경부)에 이행을 촉구했다.
일상의 실천 이어온 시민의 승리
종이팩 자원순환에 의미있는 변화가 움트고 있다. 2025년 9월, 환경부는 시민들의 정책 제안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적인 이행 계획을 내놨다. 현재의 자원순환 시스템으로 종이팩 재활용률 높일 수 없다는 데 공감하며, 2026년 시범사업 실시 후 2027년 분리수거 지침을 개정하여 종이팩을 별도 수거 품목으로 지정하고, 전국에 종이팩 수거함을 설치하겠다고 했다.


10월,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국정감사 질의에서 더욱 속도를 내기로 했다. 시범사업을 생략하고, 2026년에 곧바로 수거함 설치를 추진하겠다고 답변했다. 멸균팩 ‘재활용 어려움’ 표시에 대해서도 개선 의지를 보였다. 본래 의도와 달리 소비자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걸 인정하며 정부 차원의 제도적 보완을 약속했다.
환경부가 종이팩 재활용률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과 이행 계획을 공식화한 것은 기후위기에 무력감을 느끼기보다 일상의 실천을 꾸준히 이어온 시민들의 성취이자 쾌거다. 집집마다 설치될 종이팩 수거함은 정부의 시혜적인 정책이 아닌 시민들이 스스로 쟁취한 승리다.
진짜 반전은 지금부터
자원순환은 분리배출, 회수, 선별, 재활용이라는 유기적인 연결고리가 원활하게 작동할 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계의 기술 발전, 정부의 제도적 지원,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번 정책이 성공적으로 자리잡기 위해 다음을 제안한다.
정부의 책임있는 정책 이행
어디 말만 하다가 끝난 적이 한두번인가.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약속해도 실무선에서 우선순위가 밀려 흐지부지될 수 있다. <2025 국정감사 결과보고서>를 바탕으로 환경부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이행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한편 생산자재활용책임제도, 녹색구매법 등 관련 제도의 투명하고 책임있는 운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행동 변화의 골든타임 활용
수거함 설치 직후 3개월은 올바른 분리배출 습관을 형성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종이팩 수거함만 설치한 경우와 교육/캠페인을 병행한 경우를 비교해보니 수거량이 두 배 정도 차이가 났다. 교육/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의 행동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또한 수거함 운영 실태를 모니터링하며 시민 참여를 촉진할 수 있는 실험을 지속해야 한다.
협력적인 파트너십 구축
자원순환 시스템은 하나의 연결고리가 작동하지 않으면 전체가 망가진다. 종이팩 자원순환에 참여하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각자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이를 담보하도록 협력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운영하여 변화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종이팩 자원순환 활성화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시민 참여를 통해 제도 혁신을 이끌어낸 종이팩 자원순환 운동의 성과는 탄소중립 사회로 나아가는 강력한 동인을 제공할 것이다. 운동에 함께한 모든 분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글 | 숲과나눔 허그림